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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와 레시피/먹거리 이야기

[술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술은 언제부터?

by 잔잔한 박감독 202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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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을 일컫는 말 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흥의 민족', '음주가무에 능통한 민족'이 바로 그것인데,
과연 이렇게 술과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 최초의 술에 대한 기록은 언제부터일까?
오늘 포스팅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술'에 대한 기록과 옛날 우리 선조들의 술 문화,
그리고 그 최고(最古)의 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1. '술'이라는 이름의 어원  

'술'이라는 이름의 어원, 물에 불이 붙은듯 한 모습에서 왔다고 한다.

우리가 성인이 된 후 즐겨 마시게 되는 어른의 음료 '술'.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 '술'이라 불러왔지만 과연 이 이름의 어원은 어디서 온 걸까?

 

'술'이라는 이름의 어원은 '수불, 혹은 수블'에서 왔다고 전해진다.
수(水), 그러니까 '물'과 '불'이 결합된 말인데, 발효가 되고 있는 술에서 발생한 탄산 때문에
물이 부글부글 끓는 모습을 보고 '물에 불이 붙었다?' 하는 생각에서 붙여졌다는데
'물불'이면 물불이지 '수불'은 뭐지..?🤔 싶긴 하지만 옛날 언어체계가 지금과는 차이가 있을 테니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수불'에서 점차 수블-수을-술 과 같이 변해왔을 거라 한다.

2. 한자 술(酒)의 어원 

술 주(酒)자를 구성하는 한자인 닭 유(酉)와 물 수(水)자의 의미

우리말 '술'의 어원을 알아봤으니, 그와 더불어 한자의 어원도 간략하게 알아보자.
다들 알다시피 한자로 술은 주(酒) 자를 쓴다. 물 수(水) 변에 닭 유(酉) 자가 붙은 글자인데,
주로 우리가 '소주'니 '맥주'니 하면서 자주 쓰고 있어 거리감이 느껴지진 않는 글자다.

 

이 글자에서 닭 유(酉) 자는 술을 담는 그릇을 나타내고, 물 수(水)는 액체를 나타낸다.
따라서 술 그릇에 담긴 액체, 즉 이런 원리로 술 주(酒) 자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2. 옛 문헌에서 언급되는 선조들의 '술'에 대한 기록들

①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 전하는 고대 제천행사의 기록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고구려 축제, '동맹'에 관한 기록

'술'의 어원에 대해서는 알아보았으니,
우리나라의 음주에 대한 기록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자.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는
주로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그 내용들을 일부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우리나라 고대의 국가들인
부여, 고구려, 동예와 같은 국가의 축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여
은정월 나라에 대회를 열고, 연일 음식을 먹고 노래하며 춤을 추는데, 이를 영고라 한다.

고구려
나라의 각 마을에서 남녀가 밤에 서로 어울려 노래하고 유희를 하였다.
10월에 하늘에 제사하고 나라에 대회를 여니 이를 동맹이라 하였다.

동예
10월마다 늘 하늘에 제사하고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노래 부르고 춤을 추니 이를 무천이라 하였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 출처:
우리역사넷 한국문화사 ( http://contents.history.go.kr/ )

 

② 이규보의 동명왕편 등 국내 역사서의 기록

이 이외에 국내 문헌 기준으로의 술에 대한 언급은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명왕편에서
현전하고 있지 않은 '구삼국사 동명왕본기의 일부'를 인용한
주몽의 탄생신화 구절에서부터 시작한다.

 세상에서는 해모수를 천왕랑이라 불렀다. 어느 날, 성 북쪽 웅심산 아래 청하, 즉 압록강에서 나와 웅심연 물가에서 놀고 있는 하백(河伯)의 세 딸을 발견하고, 후사를 얻기 위해 술자리를 베풀어 세 딸을 취하게 만든 후에 유화(柳花)를 붙잡았다. 그 소식을 들은 하백이 노하여 급히 달려와 해모수와 대결을 벌였다. 정말로 천제의 아들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백이 잉어로 변하자 해모수가 수달이 되어서 잡으려 하고, 사슴이 되자 승냥이로 변신하고, 꿩이 되자 매로 변하여 덤비니, 마침내 하백은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임을 인정하고 유화와 혼인하게 했다. 하백은 해모수가 자기 딸을 버리고 가지나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해모수를 크게 술 취하게 한 다음 (후략)

-이규보 <동명왕편>,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의 종합

※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해모수신화 ( https://folkency.nfm.go.kr/ )

 

그 외에도 음주에 대한 기록이 있는 문헌들은 많지만,
아무튼 고구려의 주몽 탄생설화에서도 술에 관련된 내용이 존재하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와 같이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제천행사 등지에서
밤낮없이 '주야'로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다.

 

 

3. '술'의 최초 기록 -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기록상 현존 최고(最古)의 시, 공무도하가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기타 우리나라의 역사서 등의 문헌기록을 통해
고대 삼국시대에도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과
국내 역사서 상의 동명왕의 탄생설화 등 여러 곳에서
음주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 시기가 우리 민족의 음주의 시작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우리나라의 음주의 시작은 바로 그보다 더 이전인 '고조선'에서부터 시작된다.
문헌상으로의 첫 등장은
바로 위의 그림으로 나타낸 '공무도하가'에서부터 시작이라 볼 수 있는데,
공무도하가 자체에는 술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공무도하가에 대한 '기록'은 다르다.

 

공무도하가의 기록은 국내 문헌에서는
조선 후기 한치윤 선생의 '해동역사'라는 문헌에서 발견된다.
이 이야기는
중국 후한 시기의 채옹이라는 인물의 '금조'라는 문헌과
진나라의 최표라는 사람이 지은 '고금주'라는 문헌에서 언급된 내용을 옮긴 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조선의 뱃사공인 곽리자고(藿里子高)가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저어 갔다.
그때, 흰 머리를 풀어헤친 한 미친 남자(백수광부)가 술병을 들고 물살을 헤치며 강을 건너가고,
그의 아내가 서둘러 쫓아가며 그를 말렸다.
그러나, 이 남자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건너다 물에 빠져 익사하였다.
이에 아내는 공후(箜篌)를 가져와 타며 슬피 공무도하(公無渡河)를 지어 불렀는데,
곡조가 매우 슬퍼서 절로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노래가 끝나자 아내도 남편을 따라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졌다.
이를 모두 본 곽리자고가 착잡한 심정을 안고 집에 돌아와
아내 여옥(麗玉)에게 그가 본 광경과 노래를 들려주니 여옥이 이 안타까운 사연에 슬퍼하며 
공후를 꺼내서 그 소리를 타며 노래하였는데
지나가며 듣는 이들 모두가 크게 슬퍼하였다.
여옥은 그 노래를 이웃 여자 여용(麗容)에게 주었는데 이로써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 한치윤, <해동역사>

※ 출처 :
나무위키 - 공무도하가 ( https://namu.wiki/w/공무도하가 )

 

내용을 정리하자면,
고조선의 나루터에서 일하는 곽리자고가 새벽에 일어나 뱃일을 하다 보니
흰 머리를 풀어헤친 미친 남자가 '술병'을 들고 강을 건너가려는 것을
그의 아내가 말렸지만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강을 건너다 익사하였고,
이를 보고 그의  아내가 공후를 가지고 공무도하가를 만들어 부른 뒤 남편을 따라 투신하였다.
곽리자고가 이 안타까운 일을 보고 아내에게 이 일과 공무도하가를 알려주었고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이 이야기를 듣고 공무도하가를 부르니
그 노래가 매우 슬퍼 듣는 모두가 슬퍼하였고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공무도하가의 전승에 대한 논란거리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 기록대로라면

우리 선조들의 음주 시기에 대해 기록상 가장 오래된 시기는
고조선 때까지로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공무도하가만 가지고서는 알 수 없었지만,
이 공무도하가의 전승에 대한 이야기를 보자면
'백수광부' (여기서 광은 미칠 광 자이다. 즉 머리가 하얀 미친 사람이라는 뜻)가
술병을 들고 강을 무리하게 건너려다 결국 빠져 죽고
그것을 말리던 부인까지 투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역사서의 각종 기록은
주로 행사나 축제 등의 음주가무라는 기록이나 탄생설화 등 여러 가지지만,
정작 가장 오래된 첫 기록이나 다름없는 공무도하가의 기록은
여러 요인들도 있겠지만 결국 '음주사고'에 관한 일화인 것이다.

 

 

4. '공무도하가'의 기록이 현재 우리 음주 문화에 시사하는 것

음주 후, 그 운전대 잡지 마오

공무도하가의 기록을 통한 음주문화에 대한 시작과,
술의 어원 등을 찾고 정리하면서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공무도하가가 가지는 문학적 가치나 여러 가지 역사적 의의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단 한 가지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지나친 음주와 음주 후의 무리한 행동은 하면 안 되겠구나'

 

술병을 들고 무리하게 강을 건너다 변을 당한 백수광부는
본인의 삶도 안타깝게 마감하였고, 본인의 부인마저 참혹한 결과를 마주하게 했다.
현대의 삶에서 음주운전을 한다는 것 역시
본인의 삶은 물론 주변인들의 삶과 피해자들의 삶까지 참혹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과 비슷하다.

 

요새 부쩍 늘어난 특정 유명 영화배우나 가수들이
음주운전 사고를 내었다는 소식을 들어 더욱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무도하가에서 전하는 안타까운 백수광부의 기록은
아주 오래전 고조선 시대부터
우리에게 음주 문화에 대한 경각심과 교훈을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약간의 오버스러운 생각을 잠시 해 보는 시간이었다.

5. 술은 즐겁게, 하지만 무리하지 말아요

내가 아는 지인 중 한 명은 술을 마시는 것을 매우 좋아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술을 마시면 평소보다 과도하게 술을 마시게 되고
결국 그 끝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냥 말로만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우리의 삶에 있어 즐거운 시간을 더 즐겁게,
때로는 힘든 시간을 달래주는 것이 바로 '술'일 것이다.
선조들도 그러했기에 제천행사나 큰 경사 등의 때의 음주 기록이 남아있는 거겠지,
술이라는 것은 삶의 질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물건이지만,
뭐든지 무리하면 좋지 않은 것처럼, 과도한 음주나 음주 후 운전같이
위험한 행동까지는 가지 않는 선에서 즐기면 더욱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감독은 오늘 안전한 집 안에서 조용히 시원한 맥주 한잔을 할 생각이다.🍺
오늘 하루 열심히 보내신 모든 분들께 맥주의 상쾌함을 나눠드리는 바이며😎
술의 어원부터 최초의 술에 대한 기록과 시사점까지 나누었던 이번 포스팅은 여기까지!👋👋

(이건 요리 카테고리일까, 사회 카테고리일까...? 쓰고 나니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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